하이테크, 말 그대로 첨단기술의 경연장이었다. 과거와 달리 기술력과 콘텐츠, 세련된 마케팅 포인트를 두루 갖췄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곳에 출품된 어떤 제품과 기술들은 세계 인민들의 미래를 바꾸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할지도 모른다. 11 13일부터 17일까지 선전전시컨벤션센터(SZCEC)에서 열린 ‘2019 중국하이테크페어는 미중 무역 전쟁이 진행 중인 가운데 중국의제조 2025’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 전시회는 중국 상무부, 과기부, 공업정보화부 등 10개 정부기관이 주최하는 국가급 전시회다. 작년에는 46개국에서 3000여 개 사가 참가했으며 약 59만 명의 참관객이 다녀갔다. 올해로 21주년을 맞는 전시회는 인공지능(AI), 차세대 정보기술(IT), 스마트카, 스마트 스포츠, 스마트 홈, 스마트 제조업 등의 분야를 다뤘다.

한국 기업들은 이 전시회에한국이라는 브랜드를 걸고 참가했다. 한국관은 KOTRA, KOCCAKISA, NIPA 등의 정부기관과 전북테크노파크, 충남대 창업지원관 등의 단체에서 꾸렸다. 나라 이름을 걸고 참가한 단체관들 중에서는 한국 업체들의 규모가 가장 컸다.

●기술력 자체보다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주목 = 이번 전시회는 미중 무역합의 1단계의 서명을 앞두고 개최되며 더욱 주목을 받았다. 미중 무역 전쟁을 첨단기술 헤게모니 싸움으로 본다면 중국의 첨단기술 발달이 가속할수록 이를 견제하려는 미국의 움직임도 더 노골적으로 변하게 되리라는 시각이다.

전시회가 열리는 선전은 스마트 산업 분야의 기업들이 대거 밀집해 있어 ‘중국의 실리콘밸리’라 불리고 있으며, 미국이 무역 전쟁을 통해 견제하는 첨단기술 헤게모니의 상징적인 도시다. 화웨이, ZTE(중싱통신) 등 미국의 견제와 제재를 받은 중국 기업들도 선전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미중 무역 전쟁의 추이에 전 세계 이목이 쏠린 이 시기에 선전에서 열리는 중국하이테크페어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화웨이, ZTE를 비롯해 플렉서블 디스플레이 업체 ROYOLE과 전기차업체 BYD, 최대 드론업체 DJI까지 다양한 첨단산업 기업들이 한데 모여 기술력을 뽐내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실제 전시회에서는 중국의 다양한 첨단기술 기업들이 최신작을 뽐냈다. 몇 년 전만 했어도 중국은 첨단기술 분야에서도 싼 가격이 가장 큰 경쟁력이었다. 전시장에는 AR/VR 등 보기에는 화려하지만 선진국의 IP와는 경쟁하기 힘든 기술들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올해 전시는 화려한 눈요깃거리에 치중하기보다는 좀 더 내실을 다진 분위기다.

과거보다 ‘시장성’에 한층 더 초점을 맞추고 온 제품들은 기술력뿐만 아니라 탄탄한 콘텐츠와 세련된 마케팅 포인트도 갖추었다. 수년 전 해당 전시회에서 첫 아이디어를 선보였던 스마트 헬스 앱 개발 업체는 그간 쌓은 빅데이터로 중국인들에게 알맞은 문진서와 솔루션을 제공하게 됐다. AI스피커 개발 업체는 3D 그래픽으로 AI비서의 모습을 기기 내에 입체 투영하고, 내 마음대로 비서의 디자인을 설정할 수 있게 만들었다. 단순히 선진국이 개발한 기술을 성큼 따라가는 팔로워로서만 위협적인 것이 아니라, 소비자들의 니즈를 연구해 개발 방향을 정하는 프론티어 리더의 면모도 엿보인다.

가장 주목받은 제품 중 하나는 새 모양 드론 ‘고고버드(Go Go Bird)’였다. 중국 전자기기업체 한본이 고도로 정교한 스마트 생체모방 기술을 적용한 1세대 제품이다. 스마트 거리 측정 모듈을 이용한 2m내 자동 장애물 회피 기능, 스마트 센서를 이용해 지정된 고도에서 비행, 비행 자세 감지, 비행 자세 제어 등의 기능이 있다.

그러나 이처럼 단순히 기술력을 내세운 설명보다는 사람들의 니즈를 파고드는 마케팅이 사람들의 발걸음을 끌어들였다. 제품은 새끼 새의 첫 날갯짓을 모티브로 한 자연친화적 비행 감각과 어린 시절 누구나 꿈꿔보았던 하늘을 나는 소망이라는 콘셉트를 내세워 소구했다.

또 많은 주목을 받은 것이 최근 중국 소비 시장에서 떠오르고 있는 O2O(Online to Offline)를 활용한 기업들이었다. 자동조리기구인 ‘위바(we bar)’ 로봇 쉐프를 가지고 나온 상해애식집단이 대표적이다. 이 제품은 전용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로봇쉐프에 알맞은 식재료를 주문하면 전 세계에 서플라이 체인을 가진 공급업체에서 가정으로 식재료를 배달해준다. 그리고 식재료를 로봇 쉐프의 통 안에 알맞게 집어넣어 기계를 가동시킨다.

AI기업 인피노바(Infinova)에서 내놓은 V2224H-F 시리즈의 정보보안기술도 주목받았다. 이 회사의 스마트 일체형 얼굴 인식 시스템은 동시에 여러 사람의 얼굴을 인식해 즉석으로 분석해주는 소프트 일체형 기기다. 수백, 수천 명이 운집한 광장에서도 고해상도 카메라를 통해 실시간으로 사람들의 얼굴을 인식할 수 있다. 카메라에 잡힌 사람이 안경이나 선글라스를 썼는지, 마스크를 썼는지, 복장은 긴 것을 입었는지조차 즉석으로 분석된다. 실시간으로 출입하는 사람들의 신상을 확인할 수 있으며, 사람들의 얼굴을 분석해 통계를 낸다. 이를 통해 출결 확인과 행사 참가자 내역 등을 확인할 수 있으며, 원하지 않는 방문객의 출입을 통제할 수 있다.


스마트 솔루션 업체 광치(Kuangchi)는 이번 행사에 안면인식용 카메라가 달린 스마트 경찰 안전모를 선보였다. 범죄자 추적 기능을 탑재한 이 제품을 통해 만일의 사건에도 효과적인 대응이 가능할 것이라고 한다. 광치 부스의 디스플레이에서 웃고 있는 시진핑 주석의 모습을 한층 더 인상적으로 만드는 설명이었다.

●활로는 ‘중국이 따라오지 못하는 분야’에 있다 = 이처럼 날로 경쟁력을 더해가는 중국 기업들의 위압감 앞에서도 한국 업체들의 도전은 계속됐다. 콘텐츠나 소재와 같이 중국에서 쉽게 따라잡을 수 없는 분야에서 길을 찾는 기업들이다.

한국 콘텐츠의 이름값은 중국 업체들의 부스 현장에서도 충분히 실감할 수 있었다. AI스피커 업페 Obexx에서 틀어대는 K-pop 음악이 전시장 한가운데를 가득 채웠고,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꾸린 한국관에도 대형 스크린 앞에서 피칭이 이뤄지며 인파가 몰렸다.

이번 한국관을 통해 참가한 리마(Lima)는 웹툰 보안 솔루션 락툰(Locktoon)을 내세워 협력업체를 찾았다. 전시회 둘째 날인 14일에 중국 웹툰플랫폼인 상해유고신식과기유한공사와 락툰 솔루션을 현지 웹툰플랫폼에 설치하고 한국 웹툰을 공급하며 제3국 진출 시 공동운영을 할 수 있다는 업무협약을 체결한 것이다.

리마의 기술은 화면 위에 육안으로는 확인되지 않는 고유식별코드를 부여한다. 웹툰이나 동영상 등 비주얼 IP가 유출되었을 때 어떤 아이피에서 캡쳐해간 것인지 알 수 있어 유출 경로 추적이 가능하다. 리마 이준영 대표는 “중국에서 웹툰을 보는 인구가 1억은 된다”며 “웹툰 하면 한국을 알아주니 그 이름값과 더불어 중국 시장에 진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함께 한국관에 참가한 윤태식 스케치온 대표는 소재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했다. 전시회에 선보인 제품은 원하는 그림을 즉석에서 피부에 출력하는 기기 ‘프링커(Prinker)’다. 피부에 출력되는 프링커의 잉크는 가장 까다롭다는 유럽 기준을 통과한 화장품 원료를 쓰고 있다.

윤 대표는 “중국이 카피 못하는 것은 두 가지, 베낄 가치가 없는 것과 고도의 기술력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업체들이 ‘스킨 프렌들리 원료’라며 비슷한 제품을 내고는 있지만 그의 제품만큼 까다로운 기준을 충족시키는 것은 아직 없다는 설명이다. 그는 “어차피 중국 업체들이 하드웨어는 금방 다 베낀다”며 “인증과 특허를 갖춘 소재는 쉽게 따라잡을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KOTRA 한국관으로 참가한 신소재업체 마디는 냄새·가스·미세먼지 제거 소재를 가지고 전시장을 찾았다. 이번 전시회는 중국 협력업체도 찾고 자체개발한 탈취제 B2C제품을 팔 현지 에이전시도 구하는 것이 목표다. 송영상 마디 대리는 “굳이 중국하이테크페어를 방문한 이유는 중국 하이테크 분야 기업이 다 모이는 전시회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마디의 기술은 반도체, 자동차, 공기청정기, 생활환경 등 응용분야가 폭넓기에 이처럼 규모가 크고 다양한 첨단기술을 다루는 전시회에서 기업매칭을 하는 것이 편하다는 설명이다.

미세먼지와 환경에 대한 의식이 높아진 중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마디는 수년간 중국하이테크페어에 참가하며 현지 환경업체와 접촉을 계속했다. 전시회장에서는 중국 내 시장 흐름도 수집하고 제품도 소개하며 중국 시장 트렌드를 파악해 그에 맞게 제품도 개선해왔다. 중국에서 열리는 동류의 전시회 중에서는 하이테크페어가 가장 관람객 동원력이 높은 만큼 향후 참가에도 긍정적이다.

출처 :한국무역신문(http://weeklytrade.co.kr/m/content/view.html?&section=1&no=59000&category=5)